'달리기'라는 존재방식에 대하여
조지 쉬언의 책 ‘달리기와 존재하기’를 읽고 쓴 글
2024.12.25
#1
늦은 밤, 회사에서 러닝복으로 갈아입고 잠원 한강공원에 당도해 주차장에서 몸을 풀고는 잠실 방향으로 뛰기 시작한다. 언덕을 오르며 동호대교를 통과하고 다시 언덕의 내리막길을 달리며 성수대교를 지나면 그래피티가 그려진 굴다리를 지나게 된다. 이쯤이면 2.3km. 한강 건너편으로 갤러리아 포레니, 트리마제니, 아크로 포레스트니 하는 고층 아파트들이 펼쳐진 풍경을 바라보며 뛴다. 3km 지점을 지나면 나무 데크가 설치된 구간에 접어들고, 데크 구간을 다 뛰면 3.5km 지점 즈음, 영동대교를 통과한다. 이제부터 청담대교까지 언덕 없이 평탄한 직선 구간을 힘차게 뛰고 나면, 한강과 탄천이 만나는 탄천 입수부까지의 내리막 흙길이 기다린다. 교차로에서 탄천을 따라 오가는 자전거와 부딪히지 않게 조심하며, 다리를 건너면 표지판이 하나 있다. 여기가 5km 반환점. 표지판 기둥을 잡고 빙글 돌아, 다시 왔던 길로 달려간다.
내리막이었던 곳이 오르막이 되고, 오르막이었던 곳이 내리막이 된다. 돌아서자마자 신나게 내려왔던 길을 다시 올라서느라 숨이 가빠온다. 언덕을 오르려면, 자전거의 기어를 변속하듯 상체를 숙이고 보폭을 줄여가며 잔발로 뛰게 된다. 언덕을 거의 다 오를 즈음이면 옆구리가 찌르듯 아프고 심장은 터질 것 같다. 팔을 흔드는 것도 거추장스럽게 느껴져서 팔을 허리에 얹고 뛸 때가 많다. 그런데 신기한 건 6km를 넘어설 즈음이면 그 모든 고통들이 사라지는건지, 익숙해지는건지 모르게 자연스러워진다는 것이다. 느껴졌던 고통이 무색하게, 생각하게 된다. '어라, 이대로 계속 뛸 수도 있겠는걸?' 하고.
그 순간부터 철저히 몸의 감각에 집중할 수 있게 된다. 전력을 다해 8km를 통과하면 출발 시점에 신나게 달려내려왔던 언덕이 다시 버티고 있다. 이 언덕을 올라서면 다시 내리막이, 그리고 나만의 피니시 라인이 있을 거라는 사실을 잘 알기에 꾸역꾸역 올라선다. 다시 옆구리를 부여잡게 된다. 무릎과 발목이 아파온다. 언덕의 정점을 지나 내리막길로 접어든다. 몸에 남은 모든 힘을 다 털어내기로 결심하는 순간. 마치 단거리 경기인 것처럼. 방금까지 느껴온 고통이 무색하게, 아직 이렇게나 잘 뛸 수 있었다고? 생각하며 내리막을 내려와 그 탄력을 이용해 마지막 남은 몇백 미터의 직선 구간을 그야말로 전력질주한다. 다시 잠원 한강공원. 딱 10km를 채우고, 나이키 NRC 앱을 종료한다. 운동이 종료되었다는 음성 안내를 들으며 땅바닥에 철푸덕 주저앉아서 호흡을 몰아쉰다.
한창 열심히 달리던 시기의 이야기다.
#2
가장 힘든 순간 낙이 되어준 것을 꼽으라면 러닝이다. 회사를 다니며 가장 육체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지쳐있었을 때 러닝을 시작했었다.
수많은 변수들 사이에서, 노력은 때때로 우리를 배신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몸을 쓰고 땀을 흘리는 운동은 그나마 힘 쏟은 만큼을 돌려준다고 느꼈다. 그래서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삶이 힘들다고 느낄 때면 달리러 나갔다. 본격적으로 러닝을 시작하면 일상도 그에 맞춰지곤 했다. 책의 저자 조지 쉬언이 그러했듯이. 출근 전에는 꼭 러닝화와 러닝복을 담은 운동 가방을 챙겨다가 차에 늘 넣어두었다. 저녁 식사나 술 약속을 잡지 않는 대신 스스로와의 달리기 약속을 잡았다. 여러 차례의 경험을 통해 나는 가벼운 저녁을 먹고도 세 시간은 지나야 옆구리 통증이 사라짐을 알게 되었다. 미리 배달 음식을 시켜다가 시간맞춰 먹고, 달리기 전까지 알차게 일을 하고는 달리러 나갔다.
처음에는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들이 늘어나는 것이 기뻐서 달렸다. 거리가 들어나고 시간이 단축되는 것이 즐거웠다. 그 다음부터는 머리를 비워내고 몸의 미세한 감각에 집중하는 즐거움이 더해졌다. 비슷한 마음으로, 여름에는 서핑을 하고 요새는 수영장에 가곤 한다. 달리거나 홀로 파도를 잡거나 레인에서 물을 가르다 보면, 어떤 운동이든 인간이 만들고 즐기는 운동 자체가 사람들의 인생과 닮아있구나 싶다. 그리고 그 가운데 나와 맞는 운동을 찾아내는 것은 수만가지 삶의 방식 가운데서 독자적인 나만의 존재 방식을 발견해내는 것이 아닐까.
#3
오랫동안 삶과 철학, 그리고 종교에 대해 별다른 생각을 하지 않고 살았다. 뿌듯한 일을 하며 하루를 보내고 돈을 벌어 맛있는 것을 먹고 좋은 물건을 살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했다. 세상과 우주의 수많은 것들이 하나하나 과학으로 검증되고 있는 와중에, 나까지 굳이 삶과 철학에 대해 그리고 종교와 믿음과 신념에 대해 고민할 필요가 있을까. 그런데 한 살 한 살 나이를 먹고 이런저런 사건과 사고를 겪으며 생각이 달라졌음을 느낀다. 그래서인지 이 책이 더 와닿았다.
우리는 그 누구도, 서로의 속을 짐작할 수야 있을지언정 완전히 알지 못한다. 심지어 나 또한 나 자신을 완전히 알 수 없다. 개개인은 거대한 우주의 일부이며 동시에 그 자체로 하나의 소우주다. 인간의 몸은 우주를 느끼는 감각기관이자 이 세상과 소통하는 매개체이다. 길 위를 걷거나 뛰고 물에 잠겨 아무도 없는 레인에서 수영을 할 때, 가팔라지는 호흡을 부여잡으며 몸의 감각에 집중하게 되고 잡념을 비우게 된다. 많은 것들을 비워내고 몸의 감각에 집중하게 되는 - 명상에 가까운 기분과 느낌이 쌓이면서 스스로를 더 잘 알게 되기도 하고, 나만의 세계관이 생겨나기도 한다 싶다.
운동에 열심인 사람들에 비해 보잘 것 없지만, 오랫동안 일했던 회사를 퇴사하고 나니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생겨서 다시 운동을 할 수 있게 되었다. 아마 평생을 함께 할 반려 운동을 꼽으라면 러닝과 수영을 꼽게 될 것 같다. 조지 쉬언의 책 '달리기와 존재하기'를 읽으면서 내가 달리기를 즐겼던 이유, 그리고 요새 수영에 진심인 이유를 발견할 수 있어 즐거운 독서였다. 앞으로도 오랫동안 달리고 수영하며 스스로를, 그리고 나와 세계의 관계맺음 방식을 탐구해나갈 수 있기를 바란다.
p.s.
길게 쓴 글이 무색하게도 사실 요새는 러닝을 잘 하지 않는다. 언덕이 높은 산골로 이사를 오고 나서 퇴사까지 하고 나니, 러닝을 하기 위해선 큰 마음을 먹어야 하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때가 되면 다시 길이 나를 부르겠지 싶으면서도, 그간 소홀했던 러닝을 새해부터는 다시 시작해야지 생각해본다. 그리고 새해에는 어떤 운동을 새로이 시작해볼까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