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년 6월 11일(목)
- 나는 대체로 투명한 상태라고 생각하지만, 가끔 비밀스러운 사람이라는 반론에 부딪히곤 한다. 억울한 동시에 수긍되는 측면도 있어서 설명을 생략하곤 한다.
- 아래는 모두, 책 ‘무의식은 어떻게 나를 설계하는가’에서 인용. 대체로 비밀이 없는 투명한 상태를 추구한다. 하지만 결코 말할 수 없는 비밀스러운 사실들, 사건들, 감정들도 있다. 책을 읽으며, 글을 쓰는 행위의 일부는 그 비밀의 부스러기들을 나만 아는 형태로 은밀하게 유기해두는 것이 아닐까 생각했다. 실은 이 사이트의 글들도 죄다 평소라면 꺼내지 않는 비밀 생각의 발설이기도.
비밀에 대해 알려진 사실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비밀을 지키는 것이 뇌에는 건강하지 못한 행동이라는 점이다. 심리학자 제임스 펜베이커의 연구팀은 강간과 근친관계 피해자들이 수치심과 죄책감 때문에 그 일을 비밀에 부치고자 할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연구했다. 몇 년에 걸친 연구 끝에 펜베이커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다. “다른 사람과 그 일을 의논하지 않거나 누구에게도 털어놓지 않는 행동이 그 일 자체를 경험한 것보다 더 많은 피해를 입힐 수 있다.” 그의 연구팀은 피험자가 깊숙이 간직하던 비밀을 고백하거나 글로 썼을 때, 그들의 건강이 나아져서 병원을 찾는 횟수가 줄어들고, 스트레스 호르몬 수치도 눈에 띄게 줄어드는 것을 발견했다.
비밀은 뇌에서 정당들이 서로 경쟁하며 투쟁한 결과다. 뇌의 한 부분은 어떤 사실을 밝히고 싶어하지만, 다른 부분은 밝히지 않으려 한다. 이렇게 엇갈리는 투표 결과가 나온 것이 바로 비밀이다. 어느 정당도 굳이 밝힐 생각이 없는 사실은 그저 재미없는 사실일 뿐이다. 양당이 모두 밝히고 싶어하는 사실은 좋은 이야기다. 라이벌 관계라는 틀이 없다면, 우리는 비밀이라는 개념을 이해할 수 없을 것이다. 비밀은 라이벌 관계의 결과물이라서 의식에 감지된다. 늘 하던 일이 아니기 때문에, CEO를 불러와 처리하게 하는 것이다.
비밀을 누설하지 않는 중요한 이유는 장기적인 결과에 대한 걱정이다. 비밀 누설로 인해 친구가 나를 나쁘게 생각할 수도 있고, 연인이 마음의 상처를 입을 수도 있고, 동네에서 쫓겨날 수도 있다.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걱정을 한다는 증거는 바로 생면부지의 사람에게는 비밀을 털어놓을 가능성이 높다는 점이다. 모르는 사람 앞에서는 아무런 대가 없이 뉴런들 사이의 갈등이 사라져버릴 수 있다. 그래서 비행기에서 만난 낯선 사람이 자신의 가정불화에 대해 시시콜콜 아주 솔직하게 털어놓기도 하고, 세계 최고의 종교 중 하나인 가톨릭에서 고해소가 여전히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다. 기도의 매력도 비슷한 맥락에서 설명할 수 있다. 특히 신자의 말에 전적으로 귀를 기울이며 무한한 사랑을 보여주는, 몹시 친밀한 신들을 지닌 종교에서 기도의 매력이 크다.
비밀을 털어놓는 것은 보통 순전히 비밀을 털어놓기 위한 행위이지 조언을 구하는 행위가 아니다. 듣는 사람이 상대의 비밀을 듣다가 알아차린 어떤 문제에 대해 뻔한 해결책을 찾아내서 실제로 말해주는 실수를 저지른다면, 상대는 좌절감을 느낄 것이다. 정말로 비밀을 말하고 싶었을 뿐이기 때문이다. 비밀을 말하는 행위가 그 자체로서 해결책이 될 수 있다. 그러나 비밀을 듣는 상대가 왜 꼭 인간이어야 하는지, 아니면 인간과 비슷한 신이어야 하는지는 아직 확실치 않다. 벽, 도마뱀, 염소 등을 상대로 비밀을 말해봤자 만족감은 훨씬 덜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