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년 2분기의 여러 순간들
벚꽃 사냥, 즐거웠던 4월 어느 날, 교토 여행, 서울의 어느 집 등
2026.07.12
1.
술을 꽤 마신 3월 막바지. 충동적으로 아이스크림 먹으며 한강을 걷다가, 예상보다 이른 벚꽃을 마주하고 기분이 무척 좋아졌던 밤이 있었다. 그 날 이후로 꽤나 충동적이고 즉흥적으로 벚꽃을 열심히 사냥하러 다녔다. 여의도 벚꽃축제길, 석촌호수, 한강 어드메서 마주친 벚꽃과 함께 시작한 2분기. 오래 기억에 남을 즐거운 시간들.
벚꽃은 열흘이 채 안 되어 져버렸다. 봄비에 흩날리며 떠나가는 벚잎과 파릇하게 이파리가 돋아난 나뭇가지가 괜스레 아쉬웠다.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올해는 특히나 삶의 유한함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한다. 벚꽃을 볼 날이 많이 남지 않았다. 순간순간 기분 좋은 선택에 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내어주어야지. 주말로 휴가 기간으로 나중으로, 뭔가를 미루지 말아야지 하고 다짐.
2.
새롭게 시작하는 사람들과 이야기 나누는 것이 즐겁다. 혼자서 뭔가를 새롭게 시작하려다가 다시 회사에 소속되어 일을 하는 입장이 되었다보니, 뽀짝뽀짝 뭔가를 만들어나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와 행보가 궁금하고 또 기꺼이 응원해지고 싶어진다. 가지 않은 길에 대한 호기심과 갈망이랄까. 4월 어느 날, 커피와 빵이 무척 맛있었던 카페에서의 즐거운 대화였다.
3.
한동안 나의 슬픔 유발 노래였던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을 LP로 들으며 떠나보내준 날이기도, 삼겹살 먹고 자스민 밀크티를 처음 맛보며 걸은 날이기도 했다. 하지만 무엇보다 앉은 자리에서 책 ‘나의 이브 생 로랑에게’를 한달음에 다 읽었던 기억이 짙다.
이 책은 디자이너 이브 생 로랑의 죽음 이후, 50여년 간 그의 연인이자 비즈니스 파트너였던 피에르 베르제가 이브 생 로랑에게 보내는 결코 가닿지 못한 편지들의 묶음집이다. 두 연인의 오랜 역사를 그리고 여러 갈등과 그마저 포용한 큰 사랑을 엿볼 수 있어서, 그리고 연인을 잃은 상실감과 그리움이 절절히 느껴져서 즐겁고 슬픈 독서였다.
4.
꽤나 어이없게도, 태어나 처음으로 일본 여행. 늘 기왕 여행을 떠날거라면 기 모아서 유럽 또는 하염없이 쉴 수 있는 더운 나라 리조트를 택했었다. 일본은 언제든 갈 수 있다며 미뤄오기도 했고. 처음 교토에서 보낸 3박 4일은 대단히 하는 것 없이도 참 좋았다. 늦잠 자고 목욕하다가, 일어나서 천변과 시장을 걸었고, 배가 고프면 아무 곳에서나 간단히 음식을 사다 먹었다. 역사가 오래된 문구점에서 엽서와 스티커를 많이 샀다.
어쩌다보니 교토에 모여든 옛 동료들과 맛난 음식에 술을 왕창 먹고 취했던 즐거운 밤 수다. 따로 또 같이 여행으로 모여든 사람, 교토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 인스타그램을 엿보다 충동적으로 날아온 사람. 각자의 길은 다르지만 늘 응원.
여행 막바지에 누군가로부터 스스로를 위해 무엇을 샀느냐는 질문을 받아 정신이 퍼뜩 들었고 무척 고마웠다. 덕분에 빔즈에서 재킷과 반바지 셋업을 샀다. (그러고보니 단 한 번도 이 둘을 함께 입어본 적이 없기는 하네.)
5.
서울의 어느 집 방문. 평일 새벽 세 시까지 부추 곁들인 삼겹살 수육과 갓김치를 먹으며 오만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다. 책 만들 때도 가장 종이가 절약되는 판형을 택하신다는 찬용 님으로부터, 남은 갓김치 받아 고이 품에 안고 택시 귀가. 덕분에 갓김치 맛을 알게 되어 종종 사먹고 있답니다.
6.
이런저런 즐거운 순간들이 많았던 2분기였다.
옛 동료 설 님의 결혼 축하하며 당일치기 제주. 카페 성지에서 원두 맛보고, 일통이반에서 보말죽에 성게알을 퍼먹고, 탑동 항구에서 한라산을 올려다보며 한참 멍때리다 돌아온 날. 인생 노잼시기 탈출을 시도하며, 평년과는 달리 들어오는 족족 나가본 소개팅 (결과는 처참했다). 비슷하게 도파민 문제를 겪고 있는(?) 옛 동료들과의 도봉산 등산. 아저씨 아주미들의 뒤늦은 셋로그 도전. 다시 조촐하게 시작해보는 주말의 집밥.
미루지 않고 기분 좋은 순간을 하나씩 쌓아가는 것이야말로 행복이 아닐까 생각하는 요즘이다. 늘 그렇듯 함께 해준 사람들에게 감사할 따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