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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년 1분기의 여러 순간들

반가운 얼굴들, 감사한 선물들, 예쁜 말들, 즐거운 대화들

2026.05.05

1.

연말 연시를 호이안에서 머물렀다. 새해를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며 노트에 이것저것 적었던 기억이 난다. 여행지에서 별 생각 없이 끄적인 글인데 지금 다시 열어보니 민망하고 비밀스러운 생각들이 많다싶다. 말 안통하는 여행지에서 혼자 보내는 시간이 만들어주는 특별함이 아닐까. (이렇게 생각하려니 그간 자주 와서 덜 와도 되겠다 생각했던 호이안이 다시금 특별해지는 것 같기도, 정말 좋다고 생각했던 교토에서는 정작 새로운 생각을 많이 하지 않았구나 싶기도 하다.)

2.

안하던 일, 미뤄온 일을 해보기로 다짐했던 여행 막바지. 오래 고민해온 이사를 실행에 옮기기로. 마음에 드는 집이 나오자마자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약을 했다. 1월 말 가계약, 2월 1일 본 계약 거쳐 설 연휴 직전 입주하는 분주한 일정. 강남 떠나서 이 집으로 들어가게 된 여러 이유가 있었다. 결론적으로 두루 잘 이루지 못한 것 같아서 아쉬움이 남았다. 마음을 많이 준 집을 떠날 생각에 싱숭생숭한 2월을 보냈다. 전입신고를 마치고 회사로 돌아가던 택시에서 신승훈의 ‘보이지 않는 사랑’이 흘러나왔다. 처연하니 슬퍼서 코끝이 찡해졌다. 하지만 또 그 느낌이 마냥 싫지만은 않아서 이사 즈음까지 신승훈 노래를 꽤나 들었다.

3.

2월 내내 이사를 비롯한 여러 이유로 감정이 요동쳤다. 예전이었다면 나조차 모르게 억눌렀을 감정들인데, 상담을 받기 시작한 이래로 이런 목소리에 귀를 더 기울여주려 노력한다. 버거울 때도 있지만 결론적으로는 직면하고 해결하는 과정이 뿌듯하다. 꾸준히 받던 PT에 더해 다시 러닝 시작. 가끔은 점심시간이면 회사 근처 카페에서 드립 커피에 티라미수를 사다먹었다. 땀흘리며 뛰다보면 머리가 맑아지고, 예쁜 커피 잔에 내어져나오는 좋은 원두 커피를 마시다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예전엔 기분의 좋고 나쁨을 느끼지도 못했고 중요하다 생각지도 않았는데, 좋은 기분을 유지하는 것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다.

4.

이사 준비로 엉망이 된 집에서 설 연휴를 보내는게 싫어서, 앤트러사이트에서 한나절을 보냈다. 공간을 채우는 음악 사이를 비집고 들려오는 사람들의 수다를 백색소음 삼아 글을 쓰고 밀린 용무를 보다보면, 어느새 너른 창 밖은 어둑해지고 사람들이 떠나간 테이블은 한산하다. 그 즈음 자리를 일어서면 괜스레 뿌듯한 마음이 든다. 대단히 한 것도 없는데 말이지. 예전보다 주차 인심이 야박해지긴 했지만 여전히 이해 가능 범위에 있다. 이곳을 좋아할만한 사람들과 함께 오면 좋겠다 생각한다.

5.

텅 비어버린 집을 볼 때의 울적함이 컸는데, 새 집 이사를 끝마치고 나니 그 울적했던 마음이 거짓말처럼 많이 사그라들었다. 신기하기도 하지. 이전의 절반도 채 되지 않는 평수로 오게 되어서 가구도 물건도 많이 버렸다. 해묵은 것들을 떠나보내고, 새로운 것들을 많이 들였다. 만족스러운 소비는 발뮤다 더 브루와 그라인더. 더하여 깜짝 이사 선물로 받은 액막이 강아지와 커피 잔 세트에 정말 기뻤다. 예상치 못한 선물에 감사했고 하나하나 고른 세심함에 감동했다. 원두를 사다가 커피를 내리고, 선물받은 예쁜 잔에 따라 마시곤 한다. 덕분에 기분좋은 아침이다.

6.

올해 새로이 추천 받아서 열심히 듣던 밴드의 내한 공연 소식을 뒤늦게 알게 되었다. 안해본 일에도 열심히 나서보기로 다짐했던 덕분에 오랜만에 공연장에 다녀온 3월 어느 밤. 관람을 마치고 노래 들으며 강변북로를 타고 돌아오던 길의 한강 풍경이 오래 기억에 남을 것 같다.

7.

요동치듯 버거웠던 시간을 지나고 나니, 3월부터의 시간은 불현듯 찾아온 진공 상태마냥 고요하고 권태롭게 느껴지기도 했다. 바쁘고 정신없는데 동시에 마음이 이렇게나 공허해질 수 있다니요? 인생 노잼시기가 이런걸까 싶어하며 들여다보고 해결해나가보는 중이다.

이러나저러나 함께 웃고 떠들고 맛난 음식을 먹고 술을 마셔준 사람들 덕분에 신나게 보내었던 1분기. 돌이켜보니 반가운 얼굴들, 감사한 선물들, 예쁜 말들, 즐거운 대화들이 참 많이 남았음에 감사를. 즐거웠고 다음 분기는 더 즐거울게!